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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낮은 신음처럼 내뱉으며 몸을 뒤척였다. 하지만 몸을 움직일수록 땀이 배어 나왔고, 방 안의 온도는 더욱 올라가는 기분이었다. 그녀는 벌떡 일어나 좁은 방 안을 서성거리기 시작했다. 세 걸음이면 벽에 닿고, 다시 세 걸음을 걸으면 문에 닿는 비좁은 공간. 그 작은 공간이 지금의 여름에게는 거대한 감옥처럼 느껴졌다. 벽지에 밴 눅눅한 곰팡이 냄새마저 자신을 비웃는 것처럼 느껴져 숨이 막혔다. 여름이 낮은 신음처럼 내뱉으며 몸을 뒤척였다. 하지만 몸을 움직일수록 땀이 배어 나왔고, 방 안의 온도는 더욱 올라가는 기분이었다. 그녀는 벌떡 일어나 좁은 방 안을 서성거리기 시작했다. 세 걸음이면 벽에 닿고, 다시 세 걸음을 걸으면 문에 닿는 비좁은 공간. 그 작은 공간이 지금의 여름에게는 거대한 감옥처럼 느껴졌다. 벽지에 밴 눅눅한 곰팡이 냄새마저 자신을 비웃는 것처럼 느껴져 숨이 막혔다.
그녀는 창문을 열어젖혔다. 하지만 들어온 것은 시원한 바람이 아니라, 습기를 가득 머금은 끈적한 열풍이었다. 하늘은 낮부터 이미 불길한 징조를 보이고 있었다. 옅은 회색빛으로 물들기 시작한 구름들이 낮게 내려앉아 도시의 숨통을 조이고 있었다. 마치 자신의 마음속에 켜켜이 쌓인 불안과 분노가 하늘로 옮겨간 것만 같았다.
여름은 창틀을 꽉 쥐었다. 손톱이 하얗게 질릴 정도로 힘을 주었지만, 가슴 속의 답답함은 가시지 않았다. 며칠 전부터 시작된 이 기묘한 거리감. 겨울은 평소와 다름없이 다정했고, 여전히 여름의 이름을 부르며 웃어주었다. 하지만 그 다정함의 농도가 희석된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정혜진이라는 존재가 그들 사이에 스며든 이후로, 겨울의 세계에 자신이 차지하는 영역이 조금씩 좁아지고 있다는 공포가 그녀를 잠식했다.
보고 싶었다. 당장이라도 겨울의 집으로 달려가 그 얼굴을 마주하고, 정혜진에 대해 묻고, 그녀의 눈동자가 어떻게 흔들리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하지만 동시에 끔찍하게 두려웠다. 만약 겨울이 정말로 정혜진을 특별하게 생각하고 있다면? 만약 자신이 느끼는 이 특별함이 오직 혼자만의 착각이었다면? 그 진실을 마주하는 순간,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관계가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릴 것 같았다.
손목에 채워진 팔찌가 찰랑거렸다. 겨울이 선물한, 소박하지만 의미심장한 그 팔찌. 여름은 무의식적으로 그것을 만지작거렸다.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피부에 닿았지만, 그것조차 금세 체온에 달궈져 미지근해졌다. 이 팔찌가 정말로 의미가 있기는 한 걸까. 겨울에게 이것은 그저 '친한 친구' 사이의 우정 증표일 뿐일까. 그렇다면 정혜진의 그 가벼운 손길은? 그 웃음소리는? 손목에 채워진 팔찌가 찰랑거렸다. 겨울이 선물한, 소박하지만 의미심장한 그 팔찌. 여름은 무의식적으로 그것을 만지작거렸다.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피부에 닿았지만, 그것조차 금세 체온에 달궈져 미지근해졌다. 이 팔찌가 정말로 의미가 있기는 한 걸까. 겨울에게 이것은 그저 '친한 친구' 사이의 우정 증표일 뿐일까. 그렇다면 정혜진의 그 가벼운 손길은? 그 웃음소리는?
여름은 다시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가 거칠게 던져버렸다. 액정이 바닥에 부딪히며 둔탁한 소리를 냈지만 상관없었다. 답장을 하지 않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불안함은 확신으로, 확신은 다시 분노로 변했다. '신경 안 써'라고 수백 번을 되뇌었지만, 정작 그녀의 온 신경은 온통 겨울이라는 궤도를 돌고 있었다. 여름은 다시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가 거칠게 던져버렸다. 액정이 바닥에 부딪히며 둔탁한 소리를 냈지만 상관없었다. 답장을 하지 않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불안함은 확신으로, 확신은 다시 분노로 변했다. '신경 안 써'라고 수백 번을 되뇌었지만, 정작 그녀의 온 신경은 온통 겨울이라는 궤도를 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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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술을 깨물며 중얼거렸지만, 거울 속에 비친 여름의 눈은 이미 이성을 잃은 짐승처럼 번들거리고 있었다. 그녀는 도망치듯 방을 나섰다. 문을 닫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려 퍼졌다. 입술을 깨물며 중얼거렸지만, 거울 속에 비친 여름의 눈은 이미 이성을 잃은 짐승처럼 번들거리고 있었다. 그녀는 도망치듯 방을 나섰다. 문을 닫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려 퍼졌다.
복도를 내려가는 발걸음이 점점 빨라졌다. 계단을 내려서는 동안 머릿속은 이미 겨울이라는 이름으로 가득 차 있었다. 왜 이렇게까지 불안한 걸까. 정혜진은 그냥 같은 과 동기일 뿐인데. 겨울이 누군가에게 친절한 건 오늘만 일도 아니다. 그런데 왜 하필 정혜진이었을까. 왜 그 광경이 이렇게까지 여름의 가슴을 후벼 판 걸까.
지난주 도서관에서 겨울이 정혜진과 함께 있는 걸 본 적이 있다. 그때는 그냥 지나쳤다. 별거 아니라고, 그냥 인사하는 거라고. 하지만 오늘 캠퍼스 벤치에서 본 두 사람의 모습은 확실히 달랐다. 겨울의 어깨가 혜진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고, 겨울의 입가에는 여름이 한동안 보지 못했던 편안한 미소가 번져 있었다. 그 미소는 예전에는 여름만을 위한 것이었다. 아니, 여름은 그렇게 믿고 있었다.
언제부터였을까. 겨울이 여름에게 보내는 시선이 예전 같지 않다고 느끼기 시작한 건. 겨울은 여전히 다정했다. 여전히 먼저 연락해 왔고, 여전히 여름의 이름을 부르며 웃어주었다. 하지만 그 다정함의 온도가 조금씩 낮아지고 있는 것만 같았다. 마치 익숙해진 것처럼, 당연한 것처럼. 그 온도 차이가 여름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여름은 문득 몇 달 전을 떠올렸다. 새벽 두 시, 전화 너머로 들려오던 겨울의 목소리. "여름아, 보고 싶어"라고 말했던 그날. 그 말은 무심코 흘러나온 것이었을까. 아니면 그 순간만큼은 진심이었을까. 길가에 핀 벚꽃을 보며 겨울이 "내년에도 같이 보자"고 말했던 봄날. 그 약속은 누구에게나 하는 흔한 말이었을까. 겨울이 여름의 손을 잡고 "넌 정말 특별해"라고 말했던 그날의 기억까지. 모든 것이 다 거짓말은 아니었을 거라고 믿고 싶었다. 하지만 그 믿음이 흔들리고 있었다.
생각이 깊어질수록 가슴 한구석에서 시커먼 불안이 자라났다. 만약 겨울에게 있어 여름이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면. 만약 그 다정함이 모두에게 공평하게 분배되는 것이라면. 지금까지 여름이 겨울에게 느꼈던 모든 순간들은 혼자만의 착각이었을 뿐이다. 그 생각만으로도 숨이 턱 막혀왔다. 겨울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공포, 이미 조금씩 잃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여름의 발걸음을 더욱 거칠게 만들었다. 손에 힘이 들어갔다. 손톱이 살을 파고들었지만 아프다는 느낌조차 들지 않았다.
"아, 진짜... 왜 이렇게 복잡한 거야."
여름은 제 손으로 제 얼굴을 감싸 쥐었다. 손바닥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주변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힐끗거렸지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녀는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무조건 봐야 한다. 겨울의 눈을 똑바로 마주하고, 그 눈동자가 자신을 어떻게 담고 있는지 확인해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그 확인이 두려웠지만, 모르는 채로 견디는 이 불안보다는 나았다.
밖으로 나오자마자 훅 끼쳐오는 공기는 방 안보다 더 지독했다. 홍대의 거리엔 여전히 사람들로 북적였고, 거리의 소음과 매연, 그리고 사람들의 체취가 뒤섞여 아스팔트 위로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여름은 빠른 걸음으로 겨울의 자취방 방향으로 향했다. 밖으로 나오자마자 훅 끼쳐오는 공기는 방 안보다 더 지독했다. 홍대의 거리엔 여전히 사람들로 북적였고, 거리의 소음과 매연, 그리고 사람들의 체취가 뒤섞여 아스팔트 위로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여름은 빠른 걸음으로 겨울의 자취방 방향으로 향했다.
평소라면 구경했을 아기자기한 소품샵이나 새로 생긴 카페 같은 것들은 이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녀의 시야는 오직 앞만을 향해 고정되어 있었다. 보도블록의 갈라진 틈, 바쁘게 지나가는 사람들의 무심한 표정, 상점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경쾌한 팝송까지 모든 것이 소음으로 느껴졌다. 세상의 모든 소리가 겨울의 웃음소리로 치환되어 귓가를 맴돌았다. 평소라면 구경했을 아기자기한 소품샵이나 새로 생긴 카페 같은 것들은 이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녀의 시야는 오직 앞만을 향해 고정되어 있었다. 보도블록의 갈라진 틈, 바쁘게 지나가는 사람들의 무심한 표정, 상점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경쾌한 팝송까지 모든 것이 소음으로 느껴졌다. 세상의 모든 소리가 겨울의 웃음소리로 치환되어 귓가를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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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끝을 스치는 향기. 비 냄새와 섞인 겨울 특유의 은은한 비누 향이 났다. 여름은 그 향기에 취할 것 같아 일부러 고개를 돌렸지만, 밀착된 어깨를 통해 전해지는 겨울의 체온은 피할 수 없었다. 젖은 옷감 너머로 느껴지는 온기가 마치 전기 충격처럼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이토록 가까운 거리에서 느껴지는 겨울의 존재감은 여름의 이성을 마비시키기에 충분했다. 코끝을 스치는 향기. 비 냄새와 섞인 겨울 특유의 은은한 비누 향이 났다. 여름은 그 향기에 취할 것 같아 일부러 고개를 돌렸지만, 밀착된 어깨를 통해 전해지는 겨울의 체온은 피할 수 없었다. 젖은 옷감 너머로 느껴지는 온기가 마치 전기 충격처럼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이토록 가까운 거리에서 느껴지는 겨울의 존재감은 여름의 이성을 마비시키기에 충분했다.
여름은 힐끗 겨울의 손을 보았다. 노란색 우산의 손잡이를 꽉 쥔 손가락 끝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자신을 챙기려는 그 작은 배려, 그 조심스러운 손길. 하지만 그 다정함이 지금 이 순간에는 독처럼 느껴졌다. 이 우산이라는 작은 공간이 세상의 전부가 된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가깝지만, 정작 마음의 거리는 어디쯤에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빗방울이 우산 끝을 타고 흘러내려 여름의 어깨에 튀었다. 차가운 물방울이 닿은 곳마다 뜨거운 열기가 소용돌이쳤다. 여름은 겨울의 숨결이 닿을 듯한 거리에서 그녀의 표정을 살폈다. 걱정, 당혹, 그리고 여전히 지워지지 않은 그 특유의 온화함. 그 온화함이 너무나 끔찍했다. 그 온화함이 정혜진에게도 똑같이 제공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가슴 속에서 억눌려 있던 무언가가 다시금 끓어올랐다.
"바보같이... 빨리 들어와. 감기 걸리겠어." "바보같이... 빨리 들어와. 감기 걸리겠어."
겨울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낮게 들렸다. 그녀의 시선이 여름의 젖은 얼굴과 어깨, 그리고 떨리는 손끝에 머물렀다. 여름은 그 시선이 너무나 다정해서, 그래서 더 화가 났다. 이 다정함이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이 온기가 나에게만 특별한 것이 아니라면, 이건 너무나 잔인한 고문이었다. 겨울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낮게 들렸다. 그녀의 시선이 여름의 젖은 얼굴과 어깨, 그리고 떨리는 손끝에 머물렀다. 여름은 그 시선이 너무나 다정해서, 그래서 더 화가 났다. 이 다정함이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이 온기가 나에게만 특별한 것이 아니라면, 이건 너무나 잔인한 고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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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은 소리를 질렀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말은 끝내 삼켰다. '나를 사랑한다고 착각하게 만들었잖아'라는 말 대신, 그녀는 다시 가시 돋친 말을 골랐다. 여름은 소리를 질렀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말은 끝내 삼켰다. '나를 사랑한다고 착각하게 만들었잖아'라는 말 대신, 그녀는 다시 가시 돋친 말을 골랐다.
"너는 항상 그런 식이야.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어서, 누구 하나 상처 주기 싫어서 적당히 다정하게 굴지. 근데 그게 상대방한테는 얼마나 잔인한 건지 알아? 기대하게 만들고, 특별하다고 믿게 만들고, 정작 필요할 때는 '우린 그냥 친구잖아'라는 말로 도망치는 거. 그게 네가 말하는 다정함이야?"
겨울의 눈동자가 크게 일렁였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여름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는 이제 당혹감을 넘어선 깊은 슬픔과 분노가 섞여 있었다.
"됐어. 그냥 다 짜증 나. 너도, 정혜진도, 이 날씨도 다!" "됐어. 그냥 다 짜증 나. 너도, 정혜진도, 이 날씨도 다!"
"됐어? 그래, 됐지. 그런데 말이야, 최여름."
겨울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비에 젖은 속눈썹이 떨리고 있었다.
"네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뭔데. 나한테서 뭘 바라는 건데."
"원하는 게 무슨...!"
"말해 봐. 내가 어떻게 해야 네가 만족할까. 혜진이랑 연락 끊을까?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랑도 다 끊고 너만 바라봐야 하는 거야?"
겨울의 말은 차분했지만 그 안에는 참아낸 눈물이 배어 있었다.
"그게 네가 원하는 거야? 나를 네 새장에 가둬 놓는 거?"
여름은 그 말에 얼굴이 새하얘졌다. 아니다, 그런 게 아니다. 나는 단지, 단지 겨울이 나만을 봐 주길 바랐을 뿐인데. 하지만 입 밖으로 나온 말은 또 달랐다.
"내가 언제 그런 걸 바랐다고 그래! 너 혼자 착한 척이나 하고 있으니까 그런 소리나 나오지!"
"착한 척?"
겨울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은 너무도 씁쓸해서 여름의 가슴을 저리게 했다.
"나는 착한 척한 적 없어. 그냥... 너한테 다정했을 뿐이야."
겨울의 시선이 여름의 눈동자를 똑바로 관통했다.
"네가 아파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을 뿐이라고. 그게 그렇게 큰 잘못이야?"
여름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겨울의 말 한마디한마디가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그녀의 방패를 조금씩 조금씩 베어 내고 있었다. 맞아, 겨울은 잘못한 게 없다. 잘못은 오히려 이렇게 유치하게 굴고 있는 나 자신인데. 하지만 인정할 수 없었다. 인정하는 순간 모든 게 무너질 것 같았다.
입술이 떨렸다. 무언가 말해야 했다. 사과를 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이 끝내 목소리가 되지 못했다. 겨울은 그런 여름을 바라보며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 한숨에는 체념과 슬픔이 섞여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여름의 침묵이 겨울에게는 또 하나의 상처가 되었을 것이다. 겨울은 더 이상 기다리지 않았다.
겨울의 얼굴에서 생기가 사라졌다. 그녀의 눈에는 이제 걱정이 아니라 깊은 상처가 서려 있었다. 겨울은 천천히 우산을 낮춰 여름의 어깨를 덮어주었지만, 더 이상 그녀의 손길에 온기는 없었다. 겨울의 얼굴에서 생기가 사라졌다. 그녀의 눈에는 이제 걱정이 아니라 깊은 상처가 서려 있었다. 겨울은 천천히 우산을 낮춰 여름의 어깨를 덮어주었지만, 더 이상 그녀의 손길에 온기는 없었다.
"...너 정말 실망이다." "...너 정말 실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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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줄기가 더욱 거세게 그녀를 때렸다. 세상에 오직 자신만이 남겨진 것 같은 지독한 고립감이 밀려왔다. 빗줄기가 더욱 거세게 그녀를 때렸다. 세상에 오직 자신만이 남겨진 것 같은 지독한 고립감이 밀려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기억나지 않는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자신의 방 화장실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기억나지 않는다. 쏟아지는 빗줄기 사이로 사람들의 우산들이 무심하게 스쳐 지나갔다. 아까는 겨울의 노란 우산이 세상의 유일한 빛처럼 느껴졌는데, 이제는 그 어떤 색깔도 보이지 않는 회색빛 세상이었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젖은 신발에서 찌적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가 마치 자신의 초라한 자존심이 짓밟히는 소리처럼 들려 여름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옷은 여전히 젖어 있었고, 차가운 타일 바닥의 냉기가 온몸으로 전해졌다. 여름은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소리 없는 울음이 터져 나왔다. 빗물에 젖어 무거워진 옷이 몸을 짓눌렀다. 하지만 그 무게보다 더 무거운 것은 가슴 속에 얹힌 돌덩이였다. '실망했다'는 그 한마디가 빗물과 함께 온몸으로 스며들어 뼈마디까지 시리게 만들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자신의 방 화장실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옷은 여전히 젖어 있었고, 차가운 타일 바닥의 냉기가 온몸으로 전해졌다. 여름은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소리 없는 울음이 터져 나왔다. 좁은 화장실 안은 그녀의 거친 숨소리와 억눌린 울음소리로 가득 차올랐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니야... 내가 틀린 게 아니야..." "아니야... 내가 틀린 게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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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미안하다고 하면, 겨울이가 나를 더 우습게 보지 않을까.' '지금 미안하다고 하면, 겨울이가 나를 더 우습게 보지 않을까.'
'이미 실망했다고 했는데, 이제 와서 사과하는 게 무슨 소용이야.' '이미 실망했다고 했는데, 이제 와서 사과하는 게 무슨 소용이야.'
'아니, 지금이라도 사과하지 않으면 정말로 끝일지도 몰라.'
손가락이 전송 버튼 위에서 수없이 망설였다. [미안해, 내가 너무 예민했어], [사실은 질투 나서 그랬어], [내가 잘못했어]... 수많은 말들이 떠올랐지만, 그 어떤 말도 여름의 자존심이라는 높은 벽을 넘지 못했다. 사과하는 순간, 자신이 겨울에게 완전히 종속된다는 기분이 들었다. 약자가 되어 그녀의 처분을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이 여름을 괴롭혔다.
결국 여름은 글자를 하나하나 지웠다. 빈 화면이 다시 나타났다. 결국 여름은 글자를 하나하나 지웠다. 빈 화면이 다시 나타났다.
그녀는 휴대폰을 바닥에 던져버리고 다시 몸을 웅크렸다. 화장실 밖에서는 여전히 소나기가 창문을 거칠게 두드리고 있었다. 그녀는 휴대폰을 바닥에 던져버리고 다시 몸을 웅크렸다.
차가운 타일 바닥이 뼛속까지 파고들었다. 젖은 옷이 피부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고, 축축한 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여름은 자신의 무릎을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 방금 전까지의 대화가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반복 재생되었다.
'내가 왜 그런 말을 했을까.'
겨울의 마지막 표정이 떠올랐다. 실망. 그 단어에 담긴 무게가 생각보다 훨씬 무거웠다. 차라리 겨울이 화를 냈으면 좋았을까. 소리치고 따지고, 그래도 덜 아팠을 것이다. 하지만 저 차갑게 식어버린 목소리와 눈빛은 여름의 기억 속에서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을 상처로 남을 것이 분명했다. 그 상처는 자신이 자초한 것이지만, 그래서 더 아팠다. 겨울에게도 이런 순간이 있었을까. 나처럼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을까.
"미안하다고 해야 했는데... '사실은 질투 났어'라고 말했어야 했는데..."
여름은 혼자 중얼거렸지만, 그 말은 화장실의 텅 빈 공간에 메아리칠 뿐이었다. 이미 겨울은 돌아섰고, 빗속으로 사라졌다. 자신의 자존심 때문에 꺼내지 못한 그 한마디가 지금은 이렇게 후회가 되어 그녀를 짓누르고 있었다. '미안해'라는 세 글자가 이토록 무거울 줄이야. 왜 사랑한다는 말보다 가시 돋친 말이 먼저 나오는 걸까. 왜 진심을 숨기고 상처를 주는 쪽을 택하는 걸까. 그게 자신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어온 것이 오히려 가장 소중한 것을 밀어내고 있었다.
겨울이 우산을 포기하고 빗속으로 걸어가던 순간이 떠올랐다. 그 뒷모습은 너무도 작고 초라해 보였다. 여름은 그때 겨울을 붙잡았어야 했다. "가지 마, 내가 잘못했어"라고 말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러지 못했다. 자존심이라는 감옥에 스스로를 가둔 채, 가장 소중한 사람이 멀어져 가는 것을 바라만 보았다. 그 무력감이 여름을 더욱 비참하게 만들었다.
여름은 타일 바닥에 이마를 짚었다. 차가운 감촉이 열기에 달궈진 이마를 식혀주었지만, 가슴속의 후회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밖에서는 여전히 소나기가 내리고 있었다. 빗소리가 점점 더 거세게 창문을 때리는 소리가 화장실 안까지 울려 퍼졌다. 그 빗소리가 마치 겨울의 목소리처럼 들렸다. "너 정말 실망이다." 그 말이 빗줄기 사이사이로 반복되어 여름의 귀를 찔렀다.
화장실 밖에서는 여전히 소나기가 창문을 거칠게 두드리고 있었다.
여름은 자신의 가슴 위에 손을 얹었다. 여전히 심장은 빠르게 뛰고 있었고, 그 안에는 식지 않은 열기가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그것은 질투였고, 분노였으며, 동시에 지독한 사랑이었다. 여름은 자신의 가슴 위에 손을 얹었다. 여전히 심장은 빠르게 뛰고 있었고, 그 안에는 식지 않은 열기가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그것은 질투였고, 분노였으며, 동시에 지독한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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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꿈속에서 여름은 겨울의 손을 잡았다. "겨울아, 우리 평생 함께하자." 그 말에 겨울은 고개를 끄덕였다. 눈물이 났지만, 그 눈물은 기쁨의 눈물이었다. 하지만 꿈이 깨면 현실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겨울은 알고 있었다. 현실에서는 여름이 화를 내고 있었고, 겨울은 미안하다고 말하지 못하고 있었다. 꿈과 현실의 간극. 그 간극이 겨울의 가슴을 더욱 아프게 만들었다. 그 꿈속에서 여름은 겨울의 손을 잡았다. "겨울아, 우리 평생 함께하자." 그 말에 겨울은 고개를 끄덕였다. 눈물이 났지만, 그 눈물은 기쁨의 눈물이었다. 하지만 꿈이 깨면 현실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겨울은 알고 있었다. 현실에서는 여름이 화를 내고 있었고, 겨울은 미안하다고 말하지 못하고 있었다. 꿈과 현실의 간극. 그 간극이 겨울의 가슴을 더욱 아프게 만들었다.
잠들기 직전, 겨울은 마지막으로 생각했다. 내일이 오면,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면, 여름은 어떤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볼까. 아마도 차갑게 등을 돌릴 것이다. 아니면 평소처럼 웃으며 "밥 먹자"고 말할지도 모른다. 어떤 반응이든, 겨울은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9년을 기다려온 사람에게, 하루 더 기다리는 것은 그리 큰 일이 아니었다. 꿈속에서 겨울은 여름의 손을 놓지 않았다. 여름의 손은 따뜻하고 부드러웠으며, 겨울의 차가운 손가락을 감싸 안았다. 그 온기가 손끝에서부터 가슴으로 퍼져나갔다. 진짜라면 얼마나 좋을까. 겨울은 꿈속에서조차 이 순간이 영원히 끝나지 않기를 바랐다. 여름의 웃음소리가 바람에 실려 들려왔다. 그 웃음소리는 투명하고 맑았으며, 현실의 어두운 기억 따위는 전혀 섞이지 않은 순수한 기쁨 그 자체였다. 겨울은 그 웃음소리를 가슴에 새겼다. 이 순간만큼은 모든 것이 완벽했다. 오해도, 두려움도, 숨겨야 할 진심도 없이, 오직 여름과 겨울, 두 사람만이 존재하는 세계. 그 세계에서 겨울은 비로소 자유로웠다. 좋아한다는 말을 거침없이 꺼낼 수 있었고, 그 마음이 여름에게 닿는다는 확신이 있었다. 하지만 꿈은 언제나 그렇듯,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깨지기 마련이었다.
아침이 찾아왔다. 가는 커튼 사이로 햇살이 방 안으로 스며들었다. 먼지가 빛줄기 속에서 반짝이며 떠다녔다. 겨울은 천천히 눈을 떴다. 잠에서 깨어났지만, 몸은 여전히 무거웠고 머리는 멍했다. 꿈의 잔상이 아직 선명하게 남아 있어서, 잠시 동안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혼란스러웠다.
겨울은 옆으로 누운 채 창밖을 바라보았다. 비가 그친 후의 하늘은 맑게 개어 있었다. 창문 틈새로 신선한 공기가 들어와 방 안의 눅눅한 공기를 밀어냈다. 하지만 겨울의 마음은 여전히 어제의 빗속에 머물러 있었다.
그녀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여름의 메시지가 와 있을까. 하지만 알림창은 비어 있었다. 예상한 결과였지만, 그래도 실망스러웠다. 겨울은 여름의 이름이 적힌 채팅방을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좋은 아침'? '어제 미안했어'? '오늘 뭐 해'? 모든 말이 부적절하게 느껴졌다.
겨울은 휴대폰을 내려놓고 창가로 걸어갔다. 밖에는 평범한 일상이 펼쳐져 있었다. 아침 출근길 사람들, 문을 여는 상점들, 지나가는 자동차들. 세상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흘러가고 있었다. 하지만 겨울의 세계는 어제 이후로 조금 달라졌다. 여름이라는 중심이 흔들리고 있었고, 그 흔들림이 겨울의 모든 것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었다.
여름은 지금쯤 뭘 하고 있을까. 아침을 먹고 있을까. 아니면 아직 자고 있을까. 혹시 겨울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까. 아니면 벌써 겨울을 잊기로 결심했을까. 상상은 끝이 없었고, 그 상상은 대부분 불안한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겨울은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여름의 얼굴이 떠올랐다. 화가 났을 때 찡그리는 눈썹, 부끄러울 때 귀 끝이 빨개지는 모습, 웃을 때 눈가에 잡히는 주름. 그 모든 것이 겨울에게는 소중했다. 그 소중함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기다리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비록 그 기다림이 또 다른 기다림을 낳을지라도.
겨울은 휴대폰을 다시 집어 들었다. 손가락이 떨렸다. 여름의 채팅창에 커서가 깜빡이고 있었다.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만나서 말할 수 있을까?' 그 글자를 한 자 한 자 입력하다가, 다시 모두 지웠다. 아직 때가 아니었다. 여름이 진정할 시간이 필요했다. 너무 성급하게 다가가는 것은 오히려 더 큰 상처를 남길 뿐이라는 것을 겨울은 알고 있었다. 그녀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다시 한 번 깊게 숨을 쉬었다. 그래, 기다리자. 여름이 먼저 올 때까지.
9년을 기다려온 사람에게, 하루 더 기다리는 것은 그리 큰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하루가 영원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아무리 기다림에 익숙한 겨울이라도 감당하기 벅찬 무게였다. 그래도 겨울은 믿기로 했다. 여름이 돌아올 것이라고. 그들의 계절이 다시 시작될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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